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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이야기가 끝이났다. 그리고 애플과 나

즐겨보자!!/일상11

by 권태성 2011. 10. 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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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그가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언론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만 수도없이 하였다.

내가 자주가는 사이트들에도 끊임없이 추모글이 올라왔다.

그런 와중에 내 가슴 한켠은 조금 먹먹해져있었다. 슬픔보다는 아쉬움이 큰 감정이었다.

단순히 하룻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수많은 사람들중 한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난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미혼모의 아들, 입양아, 고졸 등.. 수 많은 사회적 단점을 극복하고 성공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통해 꿈을꾸고 희망을 얻고 혁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이런 이슈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그의 행보가 모두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옳은점이 더 많았기에 전세계에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영웅이 아니었을까


 


내가 처음 애플의 제품을 접한건 2006년 고3때였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5년전이다.

알고있기는 했지만 기숙사 생활로 컴퓨터를 구입하기도 애메한 상황이라 맥은 엄두도 못내고 계속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고등학교 3학년때 처음 iPod을 쓰게되며 애플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국산형 mp3에만 길들여져있던 나에게 아이팟은 모양만 이쁜 돌덩어리라고 할만큼 불편한 기기가 따로 없었다.

노래를 넣는데 iTunes라는 불편하고도 무거운 도구를 통해서만 노래를 넣을 수 있었고 노래를 넣었는데 왜 파일목록을 볼 수 없고

앨범별로 재생이 되는건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런데 조금씩 사용하면서 애플의 UX(User eXperience)가 탁월하였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아이팟은 클릭휠을 통한 손쉬운 조작과 간결한 UI의 조합으로 mp3p(MP3 Player) 본연의 역할 즉, 음악을 감상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최대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사용한 아이팟은 아이팟비디오5세대로 80GB의 대용량으로 함께 기숙사를 쓰는 친구들도 모두 놀랄만한 엄청난 대용량이었다.

mp3p가 용량이 그렇게나 클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모두가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3~5MB정도되는 mp3포멧의 음악파일을 다운받아서 쓰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해가 안되었겠지만

음반.. 즉 앨범단위로 노래를 듣는 층에서는 아이팟 만큼 편리한 mp3p가 없었다.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에 아낌없이 투자를하는 편이고 그로인해 음반을 구입했는데

음반을 손실없이 들을 수 있는 무손실 음원파일을 넣을 수 있는 대용량 mp3p를 찾았고 아이팟이 거기에 부합했던 것이다.

당시 외국의 음악소비시장은 국내처럼 mp3포멧의 음악파일이 아닌 음반을 통한 시장이 더 컷기에 효과가 더 컷을거라 생각한다.
(위 내용은 내가 아이팟을 써보며 추측해본 내용이므로 근거는 없는 소리다.)

아무튼 아이팟을 쓰면서 애플이란 회사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2009. 03. 14


그러다가 애플에서 Intel CPU를 장착한 맥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놈이 바로 맥북이다. 맥에 대해서는 무지했지만 평소 IT기기에는 관심이 컷던탓에 회사를 다니면서 받았던 월급도 좀 있었고해서

맥북을 구입해서 쓰게되었다.

처음엔 한영키 변환도 버벅댓지만 지금은 C,C++,Objective-C 코딩은 하는것은 Xcode에서 JAVA는 맥용 Eclipse에서 등등.. 

지금은 거의 일상에 필요한 일들은 모두 맥에서 이루어진다. (다만 게임은 부트캠프를 통해서^^;)

군생활을 할때 맥을 쓰는 선임이 있어서 같이 맥북을 가지고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

내가 모르는 분야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맥을 통해 군번으로 치면 후임이었지만 나이로는 동갑인

친구도 사귀게되어 그 친구와는 요즘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같은 소녀시대 팬인점도 친해지는데 큰 작용이..)

 

그렇게 맥북을 쓰면서 맥유저 커뮤니티를 통해 맥에 적응했고 누군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
그래서 훈장은 아니지만 지금은 KMUG라는 20만회원을 보유한 맥유저 커뮤니티의 최고레벨 회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마 맥을 쓰면서 알게된 사람들은 모두 좋은사람들만 있었던것 같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이팟터치가 국내에 처음 발매 되었을때 아이폰이 국내엔 발매가 안된상태에서 아이팟터치라도 그나마

출시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아이팟터치를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나도 아이팟터치를 너무 써보고 싶은데 도무지 물량을 구할길이 없었다. 오후에 출근해서 당직을 서야하는 날이었는데

밤을 새야하니 낮에 자두어야 했지만 수원 애플스토어에 전화를하니 아이팟터치 물량이 있다고하기에 천안에서 수원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었다.

하지만 .. 안타깝게도 수원에 도착하니 아이팟터치가 다 나갔다는 직원의 말.. 실망감을 감추고 직원에게 통화를 했었던 사람인데

물량이 있다고해서 천안에서 수원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경우냐고 항의를 하니 그쪽에서 다른 스토어에 물량을 알아봐서 용산에 있는 매장에

딱 하나 물량이 있다고 관계자에게 이야기하여 확보를 해두었으니 가서 구매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수원에서 용산까지라.. 천안에서 수원까지 왔던 거리를 어쩔 수 없이 다시 더 가야만 했다.

짜증이 좀 나긴했지만 그건 아주 잠시였다. 아이팟터치를 손에 넣은순간의 기쁨은...

그렇게 가슴에 아이팟터치를 끌어안고 기차를 타고 천안으로 내려와 회사에 출근했던 기억이 있다.


 


난 원래 아주 무감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바꾼것이 스티브잡스라는 사람이고 그가 만든 애플의 제품들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기계덩어리 하나를 사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알아보고.. 원래 그런 내가 아니었다.

여자친구에게 조차 그렇게 충실했었던 적이 없는 딱딱한 감성을 가지고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생각했던 나였는데

애플은 그런 나를 조금은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하고싶은 음악도 할 수 있었고

자동화 프로그래밍을 전공했던 내가 맥을 접하면서 그리고 스티브잡스를 알게되면서 하던일을 모두접고 조금은 허황되지만

꿈이라는것을 가지면서 군전역과 동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된것이다.

그 이후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고 앱스토어가 열리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 개발자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나마 개발자들이 한숨덜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되었다. 난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왔다.


그들은 단순한 고철덩어리에 불과했던 전자제품들에게 '감성'이라는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요소를 접목시켜 그들만의 감성을 세상에 전파했다.

지금은 비록 그들중 영웅이라 칭해지는 한 사람이 떠나게 되었지만. 그 영웅의 감성은 애플안에 녹아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영웅들이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다.

Tim Cook (CEO), Eddy Cue (Senior Vice President), Scott Forstall (Senior Vice President), Jonathan Ive (Senior Vice President)
Ron Johnson (Senior Vice President), Bob Mansfield(Senior Vice President)
Peter Oppenheimer (Senior Vice President and Chief Financial Officer), Philip W. Schiller(Senior Vice President)
Bruce Sewell (Senior Vice President and General Counsel), Jeff Williams (Senior Vice President)


스티브 잡스가 한 말중에 이런말이 있다.

부자 따위에는 관심 없다. 자기 전에 "놀라운 일을 해냈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1학년때 나를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도 말했지만 나도 그런 놀라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리고 분명한것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될것이다.

May he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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